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문단 편집) === 제509혼성전대(509th Composite Group)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작전은 제509혼성전대에 의해 수행되었다. 제509혼성전대는 1944년 12월 7일 미국 유타주 웬도버 육군 항공기지에서 창설되었다. 이 부대는 오로지 원자폭탄 투하를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이다. 부대장은 그 유명한 폴 티비츠(Paul W. Tibbets) 육군 대령. 아래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에놀라 게이를 직접 조종하여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바로 그 인물이다. 폭격전대가 아니라 혼성전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부대는 [[B-29]]를 이용한 폭격뿐만 아니라 원자폭탄과 기타 장비를 수송하기 위한 수송기들도 상당수 보유했고, 무엇보다 원자폭탄을 현지에서 정비하고 조립할 수 있는 해군 인원들과 과학자 그룹들도 명목상으로는 여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통합비행단 중에는 '1st Air commando Group'이 유명했다. [[티니안]] 현지에서 활동한 이들 과학자들은 따로 '앨버타 프로젝트'(Project Alberta 혹은 Project A)로 불렸다. 196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루이스 앨버레즈]]도 이 당시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소장파 과학자로 제509혼성전대으로 보내져 티니안 섬에서 박박 구르고 있었다.[* 루이스 앨버레즈 또한 현역 군인의 신분이었다. 미 육군 중령 계급을 받아 활동했다.] 일본 본토 폭격을 전담하는 [[제21폭격기사령부]]에 배치된 제509혼성전대의 핵심은 휘하의 제393폭격비행대대(393rd Bombardment Squadron)였다. 이 비행대대는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작전을 수행할 당시 기준으로 총 15대의 B-29 폭격기를 보유했다. 근데 이 B-29 폭격기들은 그냥 보통의 B-29가 아니라 이른바 '''"은쟁반 B-29"(Silverplate B-29)'''라 불린 특별한 모델들이었다. 은쟁반 B-29들은 후미 기관총을 제외한 다른 무장은 모두 철거하였으며, 가변피치 프로펠러[* 은쟁반 B-29들은 이 가변피치 프로펠러 덕분에 마치 '스포츠카를 주차시키듯' 자체 후진으로 바로 주기할 수 있었다. 스티븐 워커, 앞의 책, p. 118. 현대의 제트 전투기들조차도 자체 후진은 불가능하며 토잉카로 밀어주어 주기해야 한다.], 공기압으로 작동하여 신속하게 개폐할 수 있는 신형 폭탄창, [[블록버스터|초대형 폭탄]]을 장착하기 위한 영국제 G 타입 폭탄투하기 등을 갖추었다. 나중에 "은쟁반"이라는 단어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작전을 가리키는 암호명으로 발전하였다. 509전대에서 B-29를 다룰 비행요원들도 유럽전선 등에서 충분히 실전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로 채웠다. 부대장이었던 폴 티비츠 대령부터가 이미 미 육군항공대에서 가장 뛰어나고 경력이 많은 B-29 조종사로 알려져 있었으며 [[유럽]]/[[북아프리카]] 전선에서 B-17로 43회의 출격을 달성했었다. 그 외의 대원들도 역전의 노장들이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 투하 작전에서 에놀라 게이에 탑승한 폭격수 토마스 페러비 소령은 무려 63회, 역시 에놀라 게이에 탑승한 항법사 더치 밴커크 대위는 57회의 전투 비행 기록 보유자였다. 같은 393폭격비행대대 소속의 폭격수 커미트 비헌 대위는 그 폭격 솜씨가 워낙 예술적이라 아예 자신의 탑승기가 'Great Artiste(위대한 예술가)'로 이름 붙었을 정도다. 509전대는 유타주 웬도버 육군 기지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위한 훈련을 거듭했다. 이 훈련은 주로 고도 9,000m 정도의 성층권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 폭탄 투하 직후 60도 경사로 급선회 / 급강하하여 최대 속도로 도주하는 것 등이 있었다. 이 투하 방식은 바로 폴 티비츠 대령이 개발한 것인데, 원자폭탄 폭발의 충격파에서 투하 폭격기가 안전하게 이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폭격 후 그냥 수평 비행으로는 절대로 폭발 충격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서 급선회·급강하를 통해 B-29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내어 폭심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래 히로시마 리틀 보이 폭격 영상을 보면 이 급선회·급강사 기동이 나타나 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전까지도 509전대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투하할 지 잘 모르고 있었다. '원자폭탄'이라는 이름도 몰랐으며, 그냥 무언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는 최신의 초대형 폭탄 정도로 알고 있었다. 원자폭탄의 원리와 위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부임 전에 로스 앨러모스에서 핵폭탄과 핵물리에 대해 교육을 철저히 받은 부대장 폴 티비츠 대령, 원자폭탄 개발과 관리를 책임진 파슨스 대령, 그리고 원자폭탄 조립과 관리를 담당한 과학자 그룹 정도 뿐이었다. 원자폭탄을 투하할 부대원들조차 원자폭탄이 뭔지 몰랐다는 것은 [[맨해튼 계획]]과 원폭 투하 작전이 얼마나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해준다. 뒤에 나오지만 대원들이 원자폭탄의 위력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히로시마 작전 직전의 최종 브리핑이었으며, '원자폭탄'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히로시마를 향해 출격 비행 중인 에놀라 게이 안에서였다. 일본 폭격 작전을 총지휘하던 [[커티스 르메이]]조차 이를 모른 채 이전부터 "왜 상부에선 히로시마, 나가사키, 고쿠라, 교토, 니가타는 폭격 목표에서 제외시키는 거요?"라고 항의했다. 509전대는 폭격 훈련을 마치고 1945년 5월에 [[티니안]] 기지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509전대가 티니안에 배치될 무렵, 기지 전체에는 509가 전쟁을 끝내려 왔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고 한다. 물론 무엇으로 전쟁을 끝내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티븐 워커, 위의 책, pp. 117~118.] ||[[파일:2012.195.168_1.jpg|width=100%]]|| || 1945년 초 [[티니안]] 섬 북부 비행장. 불과 몇 달 전까지 조그마한 일본군 비행장이었고 그 주변은 열대 밀림이던 곳이다. 여담으로 1945년 당시 티니안 섬 북부 비행장은 미국 본토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장이었다. || 여담으로 509전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제509폭격비행단]](509th Bomb Wing)로 이름을 바꾸어 [[미합중국 공군]]으로 이관되어 현재도 존속한다. 휘하에 제393폭격비행대대도 그대로 있다. 미국 미주리 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육군항공대 시절의 [[B-29]]부터 시작해서 [[B-47]], [[B-52]], [[FB-111]]을 운용해 왔고 현재는 [[B-2]]를 운용하며 미국의 공중 핵 억지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이다. 2005년 2월부터 [[괌]]에 지속적으로 배치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분쟁에 대비하기도 하며, 2015년 1월 6일에는 에놀라 게이 파일럿 폴 티비츠의 손자가 제509폭격비행단의 비행단장이 되었다. [[파일:330px-USAF_-_509th_Bomb_Wing.png]]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실전 투하 작전 부대인 509전대의 후신 [[제509폭격비행단]]의 부대 휘장. [[버섯구름]]이 이 부대의 역사를 말해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